수목원이 안개 속에 갇혔습니다. 안개가 자욱해 몽환적인 수목원 숲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산책로 앞입니다. 안개가 비의 뒤꽁무니를 바싹 쫓고 있는 모양입니다. 비가 머물다 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안개가 스물스물 수목원을 감싸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비는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아니었습니다. 보슬보슬 가늘게 내리는 비는 산책로 곳곳에 사뿐히 내려
떠도는 공기에 살며시 앉았다가 초록잎 위에서 오랫동안 노닐다가 천천히 흙 위로 스며듭니다. 그러면 또 다시 희뿌연 안개가 스르륵 다녀갑니다. 보슬비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젖어들게 하는 듯 합니다. 아주 천천히 거센 빗줄기가 미처 닿지 못하는 곳까지 작은 빗방울의 흔적을 남기고,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처럼 가볍게 흩어집니다. 산책로가 보슬비에 흠뻑 젖었습니다. 보슬비는 여전히 소풍중입니다. 온종일 내리는 비에 한층 더 고즈넉한 산책로 짧은 길 위에서 보슬비도 산책 중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