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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꽃, 나무 이름 짓기(환경일보, 9.18)
  • 등록일2006-10-10
  • 작성자 / 김**
  • 조회3221

                          풀, 꽃, 나무 이름 짓기
                                                               
                                                                     국립수목원장 권 은 오

  일상생활에서 주민등록번호와 성명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인간의 계약, 카드발급, 각종 민원서류 발급 등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따라서 예부터 이름 짓기, 즉 작명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유명한 작명가에게 사주·관상 등을 보고 이름을 짓게 하기도 하고 문중에 따라 일정하게 정해진 돌림자, 즉 항렬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이름이 지어지고 호적에 등재됨으로써 타인과 구별되게 하는 아이덴티티(Identity)가 된다.

  식물, 즉 꽃·풀·나무 등의 경우에도 사람 못지않게 이름 짓기가 중요하다. 한 개의 식물이 여러 개의 이름으로 통용된다면 사람처럼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이상 여러 가지 오류를 범하게 되고 혼란과 불편이 야기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러한 혼란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표준화된 식물명이 필요하다.

  식물명 표준화를 위해 국립수목원에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가식물목록위원회를 2000년에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국가와 학계, 즉 식물분류학회, 원예학회, 임학회, 수목원협회 등이 자발적으로 함께 참여해 표준식물명을 선정해 분류학적 검토·심의 등 제반사항을 관장하고 있다. 현재 국립수목원 내에 상설위원회로 돼 있으며 지속적으로 국내 자생 및 귀화식물의 식물명을 관리하고 있다.

  식물별 담당자들이 보다 완성도 높은 표준식물명을 작성할 수 있도록 관련 정리 및 검토 국제 식물명명 규약의 검토 등 필요한 기준 사항을 지침서로 작성해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표준식물목록은 DB화해 공개함으로써 관련 학계, 보전기관 및 국민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국가식물목록위원회가 수목원과 학계가 자발적인 기구란 것인데 이를 해소하고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지적 재산권인 특허가 매우 중요시되고 있으며 식물의 경우 신품종은 식물특허인데 종자산업법 또는 특허법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다. 통상적으로 신품종을 개발하기까지 오랜 시간, 기술, 노동력, 비용 등 많은 노력이 투입된다. 신품종이 육성돼 일반에게 공개되면 경우에 따라 타인에 의해 복제·재생산되는 사례가 있어 신품종을 육성한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된다. 이러한 피해를 방지하고 식물 신품종 육성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세계 각 나라에서는 품종보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국제적으로는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 회원국 및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수용 국가의 의무사항이기도 하다.

  품종의 경우에도 사람이나 식물의 경우처럼 혼란을 방지하고 다른 품종과 식별되기 위해서는 품종명칭등록제를 둬 1품종당 1개의 고유한 품종명칭을 등록한 후 사용하도록 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A’라는 품종 명칭으로 등록한 다음 다른 나라에서 ‘B’라는 품종으로 등록할 수 없다. 다만 발음상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등록된 명칭이 우리나라에서 공공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을 때는 다른 명칭으로 등록이 가능하다. 종자산업법에서는 품종명칭으로 사용할 수 없는 명칭 규정을 두고 있다. 숫자 또는 기호로만 표시한 명칭, 예를 들면 59열무 300오이, 95-0840-00국화 등. 그리고 산지, 품질, 수확량, 가격, 용도, 생산시기, 생산방법, 사용 방법 또는 사용 시기를 표시한 명칭 예를 들면 청량산꿀수박, 소백산꿀수박, 이른엇갈이배추, 슈퍼고추, 세계제일고추 등이다. 또한 작물의 명칭, 속 또는 종의 명칭으로 오인되거나 혼동의 소지가 있는 명칭 등, 예를 들면 쌈청경청경채, 강낭콩강낭콩, 신선초고추, 레몬꿀수박 등이다.

  거절된 품종 명칭 중에서 무척 흥미로운 사례가 두 가지 있는데, 첫째는 공공질서 및 선량한 풍속을 문란할 우려가 있는 명칭이다. 고추의 경우 많이 있는데 변강세, 강쇠, 옹녀, 아들, 사무라이, 국가대표, 전국구, 삐까삐까 등이 거절된 것이다. 둘째는 저명한 타인의 이름이나 이들을 약칭을 사용한 품종 명칭이다. 예를 들면 역도산고추, 손오공고추, 역도산토좌호박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최근에는 지리적 표시제, 즉 원산지 보호가 비록 식물 이름이나 품종명칭은 아니지만 상품명칭과 연계성이 높아지고 있다. 인삼의 경우 부여인삼·개성인삼·금산인삼 등은 생산지명과 연계돼 타 지역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다. 중국·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종의 인삼, 즉 Panax ginseng을 재배했더라도 고려인삼으로 표기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품질이 우수하고 효능이 있는 우리나라 인삼인 고려인삼이 보호되고 있다.

  ‘얼굴값 한다’ 또는 ‘이름값 한다’는 사람에 적용되는 옛말은 식물이름이나 나아가 좀 더 세분하면 품종의 이름도 나름대로 법과 규정에 따라 심의·검토 및 결정이 되고 보호되니 이제는 식물이나 품종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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