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전나무숲은 오묘합니다. 모래알처럼 부서져 흐릿하게 빛나는 지난 가을 햇살의 부스러기들, 지나는 흔적 희미하게 남기며 떠나니는 안개 아닌 긴 바람자락, 그리고 겨울. 겨울은 전나무 가지 아래로 가득 모여 숲에 깃드는 중입니다. 조금 뿌옇지만 결코 탁하지 않습니다. 노랗기도 파랗기도 한 전나무숲의 겨울색 혹은 공기, 어쩌면 기운 그 자체가 전나무 가지 사이 잎 하나하나에 스며듭니다. 물들어가는 겨울입니다. 젖어드는 겨울입니다. 이미 배어버렸는지도 모르지요. 전나무숲 한가운데에서 겨울과 마주합니다. 보이는 만큼 여유롭고 들리는 만큼 고요한, 그저 있는 대로 흘러 가는 그가 멈추어 서는 순간까지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