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푸르른 초여름의 수목원에는 눈이 부실 정도의 햇살과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를 정도의 여유가 있습니다. 녹색으로 변한 나뭇잎 위로 햇살이 가득 내려앉을 때면 햇빛을 머금어 투명해진 잎사귀는 하늘을 담아냅니다. 영사기에서 쏘아내는 영화 필름의 화상처럼 작은 잎사귀 모양의 스크린에는 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고 구름이 천천히 지나갑니다. 손으로 보는 식물원으로 들어서기 전,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드는 복자기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풍성하게 늘어뜨린 진한 녹색의 잎들은 벤치 위의 그늘입니다. 이곳에서 읽는 책은 음표이고, 이곳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음악입니다. 복자기길에는 잔잔한 바람의 오선지를 타고 흐르는 그만한 여름의 멋이 있습니다. 복자기 짙은 녹음 아래에서 만끽하는 한가로운 여름날의 오후는 낭만을 가득 안고 오늘도 그리 흘러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