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잠시동안입니다. 조용히 내려와 아무도 모르게 젖어들던 첫눈의 작은 속삭임. 보이지 않지만 들리는 첫눈의 시간, 시간도 미치지 못할 만큼의 짧은 순간. 작게 더 작게 돌돌 말린 겨울은 첫눈 속에 고이 담겨 드디어 제자리에 안착합니다. 붓으로 덧칠하듯 얕은 흔적을 남기며 작고 하얀 겨울뭉치를 내려놓은 그는 물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아주 고요하게 속삭였습니다. 그것이 포슬포슬 내리는 눈의 소리인지 미끄러지듯 사르르 녹아내리는 눈의 소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날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던 오밀조밀한 소리의 조합은 분명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눈의 소리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수북히 쌓인 눈이 아니며 그렇기에 온 세상이 하얗지 않은 희미한 첫눈의 풍경. 오후의 노을이 그윽합니다. 첫눈의 흔적은 이미 없습니다. 그저 작은 첫눈의 속삭임이 기억을 타고 잔잔하게 들려올 뿐입니다. 그렇게 한치의 흔들림 없이 겨울이 왔습니다.